요즘 코로나로 엄마는 짜증을 넘어서 지쳐가는거 같다고 했다. 속이 답답하고, 매일같이 확진자 문자가 온다고.
근데 이런저런 기사를 봐도, 이제는 이게 금방 해결될거 같지도않다. 백신이란게 나오기 까지 시간이 필요한거고,
또 안절부절한다고 금방 해결될수있는것도 아니니... 그저 마음 관리를 잘 해야겠다 싶다.
호주는 휴지, 파스타, 쌀 사재기가 난리여서 호주 슈퍼가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오늘부터 아침 8시부터 9시까지는 노약자와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이 물건을 구매할수있다. 놀라운 규정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상황에서도 호주의 기업들은 노약자를 생각하는 모범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오늘의 법륜스님 이야기는, 역시나 정토회 홈페이지가 출처다. 그리고 나는, 코로나와 관련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주제와 관련된 말씀만 가져왔다. 이번의 온라인 법문도 내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따를수만 있다면 ㅎㅎ 좋은 말씀이다. 항상 되새겨야 하는데, 자꾸 잊어버리고 살게된다.
오늘 올라온 말씀은 아니지만, 코로나와 관련해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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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9. 부처님 열반일 기념 온라인 법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2020.03.11.
31,184 읽음
안녕하세요. 오늘은 음력 2월 15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날입니다. 스님은 열반일을 맞이하여 서울 서초법당에서 생방송으로 법회를 열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매년 음력 2월 7일 출가일부터 음력 2월 15일 열반일까지 매일 법문을 듣고 3백 배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8일 전 출가일에 스님의 법문과 함께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열반일이자 지난 8일의 정진을 회향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전 10시, 스님은 카메라 너머 전국의 정토행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서초법당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만 각자 업무를 하다가 법문을 듣기 위해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기 2564년 부처님 열반하신 열반절입니다. 불기는 열반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2564년째 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반일을 맞이하여 열반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마지막 여로를 보면서 열반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겠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모습
부처님은 3개월 후에 열반에 들겠다고 선언하신 후 대중을 이끌고 간타키강을 건너서 파바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춘다의 공양을 받고 심한 병이 들었습니다. 카쿠다 강에서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신 후 쿠시나가라에 있는 사라나무 숲에 이르러서 옷을 네 겹으로 깔아 누우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들겠다.’
이 말을 듣고 아난다는 슬퍼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아난다를 위로했어요.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나의 가르침인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있으리라.’
그때에 사라 숲에서는 때 아닌 때에 꽃이 피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며 풍악이 울렸습니다. 진짜 그랬는지 아니면 후대에 그렇게 묘사했는지는 모릅니다. 아무튼 그 기이함에 대중이 놀랄 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이것은 하늘의 신들이 여래의 열반에 임해서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1의 공양이 아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도 부처님은 법의 길이 무엇인지 아주 분명하게 얘기하셨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하라
그리고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부처님께서는 ‘아직도 의문이 있는 것이 있으면 물어라’라고 하십니다. 대중은 ‘더 이상 의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최후의 설법입니다.
‘모든 것은 쉴 사이 없이 변해 가나니 부디 마음속의 분별과 망상과 밖의 여러 가지 대상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부지런히 정진을 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일함을 원수와 도둑을 멀리하듯이 하여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정각을 이루었다. 마치 낙숫물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정진을 하여라. 비구들아 이것이 여래의 최후의 설법이니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세상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마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느냐입니다. 일시적인 복락을 얻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뇌의 근본 뿌리를 소멸시키는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둘째,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하다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라는 표현으로 비유하신 겁니다. 비록 우리가 아직은 중생이기 때문에 온갖 업식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 법을 따라 꾸준히 정진하면 누구나 다 안온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죽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종말론적 구원에 빠져드는 이유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조급할 때가 많습니다. 돈도 빨리 벌려고 하다 보니 복권 당첨, 도박, 주식, 부동산에 자꾸 기웃거리게 되는 겁니다. 출세도 빨리 하려고 하다 보니 여기 줄 서고 저기 줄 서고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종교를 찾는 이유도 빨리 구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일어나는 신흥 종교들을 보면, 기독교든 불교든 할 것 없이 대부분 종말론적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종말론적 신앙에 빠져드는 이유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본인은 이미 낙오자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이가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공부해서는 명문대에 갈 수도 없고, 대기업에 취직할 수도 없고, 고시도 없어졌습니다. 의사가 되기도 어렵고, 갑자기 돈을 벌기도 어렵기 때문에 심리적인 절망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욕망은 없어진 게 아닙니다. 욕망은 있는데 그것을 실현할 길이 막혀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욕망을 제어함으로 스스로를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이와 달리 욕망은 그대로 두고 그 욕망을 실현할 길이 막혀서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주는 게 종말론적인 구원관입니다. ‘이걸 믿으면 휴거가 왔을 때 천국에 갈 수 있다’, ‘얼마 있으면 미륵 부처님이 오시는데 그때 우리만 구원을 받게 된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제시하는 겁니다. 절망에 빠진 특정 계층이나 젊은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런 종교를 믿게 되는 겁니다.
이것도 다 인류 역사에 늘 존재해 왔던 사회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은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달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보면 표시가 안 나는데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절망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억압이 되어 있는데, 어떤 사건을 통해서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 가르침이 획기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이런 상황을 만나 분출하게 되는 거예요. 분출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좀 잠잠해졌다가 다시 또 축적되어서 분출합니다.
우리 사회가 바깥에서 보면 건강해 보이지만 특히 젊은이들의 상태는 사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좌절감이 큰 상태입니다.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성공과 출세를 계속 부추기지만,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은 성공과 출세를 도저히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성공과 출세를 자꾸 부추기는 것이라도 멈추면 괜찮은데, 한쪽으로는 성공을 부추기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성공할 수 있는 사다리를 다 끊어 놓았습니다. 거기서 생긴 좌절감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종말론적 신앙으로 분출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회적인 환경 속에서도 여러분들은 이곳에 와서 부처님 법을 배워서 바른 길을 가겠다고 하니 참으로 대견합니다. 이 길이 사실은 쉬운 길이 아니거든요. 여러분들이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면, 어떨 때는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욕망을 추구하거나 허황된 종교를 믿고 있는 바깥사람들과 여러분을 비교해보면, 부처님 법에 따라 정진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여러분들은 참으로 기특하고 기특해요. 그러니 여러분들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좀 갖고 부지런히 정진을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에서 온라인 생중계를 보고 있는 정토행자 여러분!
오늘 부처님의 열반일을 기념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은 수행의 목표입니다. 결국 우리가 수행을 통해 마지막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바로 ‘마음의 평화’입니다.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화
일이 많으면 좀 바쁠 수 있고, 일이 적으면 좀 한가할 수 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의사라면 이렇게 마음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가 많을 때는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서 좋고, 환자가 없을 때는 내가 한가하게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예요. 빠르게 움직이던 속도를 약간 늦추게 된 사람들의 경우 한가하다고 해서 게을러지면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반면에 일이 많아진 사람들의 경우 바쁘다고 해서 마음까지 조급해지면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결 같이 자기 마음의 중심을 딱 잡아야 합니다.
경계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면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는데' 이렇게 자책하지 말고, 흔들리는 자신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오뚝이가 흔들리다가 스스로 멈추듯이 마음의 중심을 딱 잡게 됩니다.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용맹정진의 마지막 날입니다. 열반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부처님의 유훈에 따라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또한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파하겠다는 각오도 함께 다져 봅시다.
젊은이들이 지금 헤매고 있는 원인을 개인의 어리석음이나 종교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정토행자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부처님의 좋은 법이 그들의 삶에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전하지 못했나? 왜 우리가 그들을 밝은 곳으로 미리 인도하지 못했나?’
자꾸 그들이 어두운 길로 갔다고 탓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과 방법의 문제도 깊이 반성을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그런 식으로 선교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세력을 모으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청년들의 좌절이나 자영업자의 좌절과 같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기가 참 어려운 것은 이들의 좌절이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자영업자들의 요구는 ‘사업이 안 되어서 힘드니까 옛날처럼 사업이 잘 되도록 해달라' 하는 겁니다. 정부가 아무리 추가 자금을 풀어도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래도 굶지 않고 밥 먹고 살 수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긍정을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남은 과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런 긍정성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으면 문제를 풀기가 참 어렵습니다.
마스크 대란을 통해 얻는 교훈
마스크 대란이 일어난 원인도 마찬가지예요. 하루에 최대 1000만 장을 생산할 수 있는데 5000만 명이 하루에 1장씩 쓰겠다고 하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불안 심리가 작용해서 여러 장을 한꺼번에 구입하려는 사람들까지 많아지니까 더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스크를 꼭 써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첫째, 의료진입니다. 환자를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 장이 필요합니다. 둘째, 생산직 노동자입니다. 공장에 출근해서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매일 마스크가 필요합니다. 셋째, 장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매일 불특정 다수의 손님과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가 꼭 필요합니다. 넷째, 이 집 저 집 다녀야 되는 택배 회사 직원들입니다. 다섯째, 회사에 출근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무실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루 종일 일해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니까 마스크가 꼭 필요합니다. 여섯째, 노약자들도 바이러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초등, 중등, 고등학교의 개학이 모두 연기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는 꼭 마스크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잖아요. 시골에 사는 노인들은 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데 왜 마스크가 필요합니까? 정토회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공동체 식구들도 이동하지 않고 한 장소에서 농사짓고 살기 때문에 마스크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이 적은 곳은 덜 쓰고,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이 많은 곳은 많이 쓸 수 있도록 정책이 추진되어야 해요. 그런데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니까 지금 정부는 이걸 정책에만 의존해서 해결하려 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한민국이 자유주의 사회가 맞는지, 사회주의 사회로 가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이렇게 비아냥 소리까지 듣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법이나 제도를 이용해서 모두에게 똑같이 배급하는 정책을 지금 시행하려고 하는데, 배급을 하게 되면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넘는 마스크가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마스크를 다 받게 됩니다. 그 결과 정작 마스크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부족할 수가 있어요.
이런 혼란이 생긴 원인은 우리의 조급함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불안감으로 인해 흥분을 하면, 지도자는 그 흥분을 진정시키는 일을 해야 되는데, 계속 제도로만 해결하려고 하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해도 안 되니까 또 저렇게 바꾸고, 저렇게 해도 안 되니까 또 이렇게 바꾸고, 그래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거예요.
이 문제는 마스크의 절대 생산량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제도로는 어떻게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 생산량을 왕창 늘리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나서 다시 수요가 줄어들었을 때 재고 처리가 또 문제가 됩니다. 국민들의 조급함을 조금만 더 가라앉히는 노력을 하면 지금 생산량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마스크 생산량이 많은 나라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황사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마스크 소비량이 인구수에 비해 많기 때문이에요. 마스크의 품질도 좋아요. 그러니 우선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19에 가장 대응을 잘하는 국민
지금 전 세계를 한 번 보세요. 미국이며 이탈리아며 다들 식량 등 생필품 사재기를 하고 난리입니다. 환자 수가 많은 데도 사재기를 안 하면서 조용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마스크를 사려고 줄 서는 것만 안 하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국가가 될 겁니다. 의료진도 가장 열심히 방역하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봉사를 하고 있고, 전 국민이 개인위생에 관심도 많고 생활 수칙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감염이 많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위기관리 능력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을 보여서 국위 선양을 할 수도 있었는데, 이 작은 마스크 하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해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거 아닙니까?
지금 마스크 하나 사려고 수 천 명이 줄을 서고 난리잖아요. 이제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었으니까 해당 요일에 맞춰서 구매하면 되는데, 어제 뉴스를 보니까 난동을 부리는 일까지 있었다고 해요. 이게 다 조급함 때문입니다. 새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우면, 쓰던 마스크를 세탁하거나, 헤어드라이어로 건조하거나, 알코올에 소독해서 재사용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필터가 좀 손상될 수는 있지만, 방역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거리 두기입니다. 2미터 정도의 적정 거리만 잘 유지하고 손 씻기를 철저히 하면,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지금 약국에서 약사들이 마스크 판매를 하느라 조제를 못 한답니다. 약국에 와서 항의를 하거나 욕설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어제 뉴스를 보니까 지폐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지폐를 전자레인지로 소독하다가 다 태워서 교환해달라고 은행에 왔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모두 웃음)
이걸 보면 불안 심리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정토회가 해야 할 일은 다른 봉사를 할 게 아니라 이런 지나친 불안 심리를 가라앉히는 일입니다. 우리 정토행자들이 주위의 가족들, 친지들, 직장동료들이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는 않되 철저히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외출을 하거나 외부인을 만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자주 씻고,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출입할 때는 굳이 출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열이 있거나 증상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출입을 안 해야 해요. 이런 정도의 도덕성을 우리 국민들이 가진다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법문은 죽는 순간에도 수행을 강조했던 부처님으로 시작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자고 당부하며 끝이 났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정토행자들은 열반의 의미를 새기며 마지막 정진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BTN ‘뉴스 인 뉴스’에서 스님을 촬영하러 찾아왔습니다. 다음 소식은 내일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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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에도 스님이 이번 3월달에 오시기로 했는데, 아마 어려울것 같다.
한참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말씀 항상 정토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들을 수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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