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talk

정토회 스님의 하루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나가는 지혜"

by 큐리짱 2020. 3. 16.

이제 코로나가 호주를 휩쓸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사람들이 사재기하는 현상이 뉴스에, 혹은 내 주변 슈퍼에 드러난다. 수니는 엊그제 한사람당 파스타 2개, 휴지 1개, 다른거 2개 등등 기본 생필품의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내가 슈퍼에 갔을때도, 여전히 휴지는 없었고, 파스타는 동이 나있었다. 그냥 일상생활하는것 같은, 전혀 다를것 없어 보이는 호주사람들의 일상도 이렇게 흔들리기 시작했구나 싶어졌다.

무언가, 나아지는거 같지 않고 장기화되는것에 살짝 지칠 무렵, 정토회 홈페이지에 법륜스님의 말씀이 올라왔다.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길을 제시해주시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말씀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올려본다.

이 '스님의 하루'는 정토회 홈페이지에 있다.

 

----------------------------------------------------------------------------------------------------------------------------------

 

안녕하세요. 오늘도 코로나 19 감염 확산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수행 법회가 열렸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법회가 이제는 점점 익숙해져갑니다.

10시가 되자 전국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이 노트북과 스마트폰 화면 앞에 앉았습니다. 스님이 생중계 카메라를 향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은 제10차 천일결사가 시작되고 나서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작심삼일이라고 하는데, 오늘까지는 다들 정진을 잘하셨습니까?”

카메라 너머로 이구동성으로 “예” 하는 대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삼일만 잘 넘어가면 열흘을 넘기게 되고, 열흘만 잘 넘어가면 한 달을 넘기게 되고, 한 달만 잘 넘어가면 두 달을 잘 넘기게 되고, 두 달만 잘 넘어가면 백일까지 무난히 잘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10차 천일결사가 시작되고 나서 첫 번째로 맞는 수행 법회이기도 합니다. 법당에 모여서 맑은 눈을 보면서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스님은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변해나갈 것인지, 우리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수행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가늠해보는 사회 변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보게 됩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가 조금씩 계속 변화하지만 제도와 윤리, 도덕, 가치관은 변하지 않고 과거의 모습을 유지함으로써 양쪽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기존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반면 그렇다고 새로운 질서가 아직 나오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이 시기를 혼란기라고 말합니다. 이 혼란기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희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혼란기에는 발전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늘 똑같은 가치관, 믿음, 생활방식에 안주해 있었는데, 혼란기가 되면 이런 것들이 모두 붕괴되니까 처음에는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좀 앞서서 연구한 사람을 후세에서는 ‘선각자’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끝까지 과거를 움켜쥔 채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가 결국 역사의 낙오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혼란기에는 이런 변화를 충분히 파악해서 그 기초 위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들뜬 감정이나 조급한 마음에 기초해서 어떤 주장을 하게 되면 일시적으로는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조금 더 지속되면 물에 거품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듯이 그 호응도 곧 사라지게 됩니다.

이럴 때 신흥 사상이 출현해서 기존 제도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제안들을 주장합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두고 ‘변법의 시대’라고 말하죠. 이런 시기에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려는 사람들이 충돌하게 됩니다. 그래서 개화파와 수구파, 진보와 보수, 이렇게 나뉘어서 정치적인 갈등을 일으키게 되죠.

지금까지 우리 역사도 그런 갈등을 수없이 거쳐 왔어요.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다가 산업사회로 바뀌었고, 산업사회에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변화에 따라 인간관계도 바뀌었습니다. 농경사회에는 주로 신분제에 의해 인간관계가 유지되다가, 자본주의 시대에는 신분을 넘어 자본을 우선시하는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공간을 사용하는 양상도 바뀌고 있어요. 평면적인 토지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평가하다가, 도시화가 이루어져서 토지 가격이 너무 오르니까 공간을 층으로 나눌 수 있게 고층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층건물로도 공간이 부족하고, 건설비도 많이 드니까, 이제는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 변화는 대부분 점진적으로 일어나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 변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새로운 방식으로 급속하게 이전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이미 우리 사회는 평면 공간에서 3차원 공간으로 이동했어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토지를 많이 가지려 했는데, 지금은 고층빌딩이나 건물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또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해가고 있는데,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하니까 이동 속도가 더 빨라져서 이제는 급속도로 이동을 하게 될 겁니다.

종교를 예로 들어볼게요. 지금까지는 대형 사찰이나 대형 교회처럼 큰 공간을 갖춘 경우가 유리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고,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니까 그런 큰 공간이 갖던 유리한 점이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조건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안 그래도 온라인 공간으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이동 속도가 매우 빨라져 버렸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해서 사회 변화는 급속도로 일어나게 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시대가 소가족 시대로 변해갔고, 핵가족 시대가 되었다가 이제는 혼밥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변해왔습니다. 가만히 놔둬도 이렇게 변해가는 추세였는데, 지금 일어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이런 변화를 더욱더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면 1인용 주거 공간으로 분화되어 가는 속도가 더욱더 빨라지게 됩니다.

개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관계 맺음

이렇게 개인화되어가는 흐름에만 초점을 맞춰 이해하면 이런 현상을 개인주의로만 설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주거 공간이 개개인으로 분화되면 전염병으로부터 안정성은 보장되지만 삶의 효율성은 예전보다 떨어집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이유는 협력을 하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협력을 했는데 그 협력 관계가 착취 관계로 변질됐습니다. 도시를 이루는 과정에서 계급이 발생하고, 속박과 착취가 이루어졌습니다. 속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지나치게 개인주의화 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가능하면 서로 연관을 많이 맺고 모여 살되, 개개인은 상호 구속이 덜 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기주의에 중심을 두고 관계를 맺게 되면 그 관계가 속박을 가져오는 관계가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관계를 해체하게 되면 개인주의로 흘러가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전제로 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간다면, 인간관계가 다양하게 맺어져도 개개인을 서로 속박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저절로 그렇게 변해가는 것은 아니에요. 진화의 흐름이든, 세상의 흐름이든, 이 세상은 효율성을 따라서 자꾸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효율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시적인 효율이 어떤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다음에는 그것이 오히려 큰 장애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키가 큰 것이 효율적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점점 커졌는데, 어떤 사회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사회 적응에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키가 큰 쪽으로 진화해 온 생물이 이제는 멸종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겁니다.

환경을 탓할 것인가,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가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모두 깨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한다’,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야 한다’, ‘한번 세운 계획은 바꾸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 상황은 계획을 안 바꿀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일상이 깨어지는 충격이 오면서 많은 혼란과 고통,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기에 적용해서 지금의 변화를 직시하고 대응할 수 있다면, 이런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번 일이 계기가 돼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비가 며칠 상관으로 골고루 오면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비가 왕창 내린 탓에 홍수가 나서 손실을 볼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또 비가 너무 안 와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자연현상을 인간의 뜻대로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비가 적절히 오면 좋겠다’ 하는 것은 농부의 입장이에요. 비가 적절히 오는 게 과연 자연 생태계에도 좋은지는 알 수 없어요. 그리고 각자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과연 어느 정도가 적절한 것인지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주어진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끔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비가 한꺼번에 내렸다고 마냥 홍수만 탓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피해를 막기 위해서 조치를 취해야 해요. 이때 둑을 쌓는 것은 조금 소극적인 조치입니다. 피해를 막는 효과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댐을 만드는 것은 적극적인 조치입니다. 피해도 막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가뭄이 들었을 때 저장한 물을 유용하게 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가뭄에 대비해서 지하수를 파놓는 것 또한 적극적인 대응책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죠.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막을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일상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어느 정도 조절은 해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상의 변화도 우리에게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일 직장에 나가던 사람이 과로가 누적되어서 건강이 안 좋은 상태라고 합시다. 그런데 직장에 안 나갈 수는 없으니까, 치료를 계속 받긴 해도 쉬지 못하고 출퇴근을 계속해야 해서 건강이 더욱 악화됐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상에 갑자기 변화가 생겼습니다. 출근을 못하니까 수입이 약간 줄어드는 손실은 있지만,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강제로 쉴 수 있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몸은 한결 좋아질 겁니다. 이처럼 지금의 변화가 지금 당장은 손실로 느껴지는데, 길게 보면 이 사람에게 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온라인 소통 방식이 가져올 변화

지금까지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은 넓은 공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고, 재산 규모도 크고, 활동하는 사람 수도 많아서, 선교나 포교를 하기에 매우 유리했습니다. 이에 비해 정토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대중이 모일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도 갖기 어려웠기 때문에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었습니다. 만약 정토회가 사람을 모으고 공간을 넓히는 방식으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과 경쟁한다면, 계속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간을 확장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사회 변화가 불어 닥치니까 기존의 큰 공간이 쓸모가 없어져 버리잖아요. 큰 공간이 갖던 유리한 점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빈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가 엄청나게 많이 듭니다. 어제까지 유리했던 게 하루아침에 불리한 조건이 돼버린 겁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까 유지하거나 관리할 게 없어요. 온라인 시스템을 잘 준비해서 접근하면, 오히려 더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겁니다.

물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정토회도 손실이 있습니다. 3월에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을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고, 여러 가지 활동가 교육도 못 하고 있고, 천일결사를 새로 시작할 때 논의해야 할 것이 많은데 모일 수가 없어서 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손실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변화가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여러분의 삶도 좋아지지만, 정토회도 마찬가지예요. 이러한 조건에 놓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정토회가 그동안에 하지 못하거나 미숙했던 것을 이번 기회에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불리한 조건을 유리한 조건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서로 내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온라인으로 화상회의를 하자고 제안하거나, 온라인으로 불교대학을 운영하자고 제안했을 때, 오프라인으로 할 때보다 그 효과가 늘 부족하게 느껴져서 실행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오프라인에서 할 수 없는 조건에서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길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하자고 하면 늘 망설였던 사람들도 이제는 온라인 방식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처럼 온라인 방식을 자꾸 사용해보면, 오프라인 방식과 비교할 때 불리하다고 여겼던 점 이상의 또 다른 유리한 점을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나가는 지혜

그동안 우리는 정진을 할 때도 다 함께 모여서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면서 영향을 받는 방식으로 정진을 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되니까 정진도 집에서 혼자 해야 합니다. 물론 더 게을러져서 정진을 안 하게 될 확률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혼자 정진해보는 경험이 축적되면 오히려 자립심이 더 커집니다. 누구에 의지해서 정진을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정진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지금 상황은 정진에도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나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갈 것인가?’

이런 자세를 갖는 게 수행이에요. 늘 뭔가를 따라가는 게 수행이 아니에요. 어떤 상황에서든 또렷이 깨어있어서 주체적 관점을 갖고 나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다면서 막 바쁘게 살다가, 기차나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갔는데 갑자기 출발 시간이 한두 시간 늦어지면 이번엔 또 시간이 남는다고 지루해합니다. 시간은 늘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데, 바쁜 마음도 내가 만든 것이고, 지루한 마음도 내가 만든 거예요. 그러니 바쁜 와중에 기어이 명상을 하겠다고 하지 말고, 바쁠 때는 일처리부터 먼저 하세요. 그러다가 시간이 남게 되면 그때 명상을 하고요. 시간이 남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못했던 명상을 그때 하면 되고, 못 읽었던 책을 그때 읽으면 되잖아요. 비가 많이 오면 그 물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가뭄이 들 때 쓰듯이,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는 자세를 갖는 게 수행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 뜻대로 안 됩니다. 세상은 늘 우리 뜻과 상관없이 움직여요. 물이 남으면 저축해 두었다가 모자랄 때 쓰면 되듯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든 우리는 그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효율적으로 쓰면 돼요.

두려움과 원망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성격이 안 맞는 사람과 같이 일해야 해서 힘들다고 질문하면, 제가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요?’

상대의 수준이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안 되는 건 맞아요. 내가 원하는 남편, 내가 원하는 자식, 내가 원하는 동료,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닌 건 맞습니다. 내가 원하는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참 드물어요. 그래서 이럴 때는 그 사람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은 지에 대해 점검해봐야 해요.

‘그래도 있는 게 낫지 않느냐?’
‘그래도 청소라도 해주지 않느냐?’
‘그래도 전화라도 받아주지 않느냐?’

막상 그 사람이 없어지면 ‘아이고, 그래도 있는 게 나았다’ 이런 얘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있을 때는 성질이 탁 나니까 ‘없는 게 낫겠다’ 하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래서 물어보면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진짜 없어 보면 안 그렇습니다. 있는 게 나은 경우가 더 많아요. 물론 진짜 없는 게 더 나은 사람도 있긴 있어요. (모두 웃음)

어떤 사사로운 감정의 문제를 떠나서도 정말로 없는 것이 낫다고 판단이 될 때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관계를 끊고 정리하는 겁니다. 둘째, 그를 보살피는 마음을 내는 겁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상대가 나에게 이익이 안 되더라도 내가 오히려 상대에게 도움을 주고 보살펴야 하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JTS가 구호활동을 하는 것도 그런 경우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선택을 해야 하는 거예요. 상대가 나에게 이익을 주고 있는 데도, 내가 원하는 이익에 못 미친다고 헤어졌다가 나중에 손실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홧김에 버렸다가 나중에 아까워지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감정을 진정시킨 상태에서 자신에게 냉철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 사람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은가?’

이 점을 따져봐야 해요. 그래야 감정에 따른 손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사실은 나한테 손해라면 그 관계는 끊어도 괜찮아요. 그렇다고 해서 손실이 나면 다 관계를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손실이 나더라도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다만 그때는 상대에게 이득을 보려고 하면 안 되고, 상대를 내가 조금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관점을 딱 바꿔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 ‘이 사람은 무조건 함께할 수 없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조금 더 마음을 진정시켜서 관계를 재설정해야 합니다. 부부로서의 관계는 부적절하지만, 친구로서의 관계는 괜찮은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아이가 있지만 부부로서의 관계는 끝내고 배우자와 헤어졌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상대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의 아빠나 아이의 엄마로서는 관계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겁니다. 그럴 때는 친구로서의 관계를 유지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감정 때문에 친구로서의 관계와 부부로서의 관계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과거에 친구였다고 해도 부부가 될 수 있고, 과거에 부부였다고 해도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그게 도저히 안 되면 그때는 관계를 정리하는 수밖에 없겠지만요.

못 쓰는 물건을 모아두었다가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부부로서는 쓸모가 없지만 친구로서는 쓸모가 있을 수 있고, 친구로서는 쓸모가 없지만 또 다른 관계로는 쓸모가 있을 수 있어요. 땅도 마찬가지예요.

‘여기는 땅이 너무 건조해서 작물을 심기에는 부적격하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메밀이나 감자를 심으면 잘 된다.’
‘여기는 흙이 너무 찰흙이어서 곡식 농사는 짓기 어렵다. 그러나 고구마 농사는 잘 된다.’

이런 관점을 갖는 것이 수행입니다. 절을 하거나 앉아서 명상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에요. 항상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응할 때 우리는 두려움과 원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적 관점입니다.

앞으로 더 강한 바이러스가 찾아오더라도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일은 앞으로 몇 년마다 계속 일어난다고 봐야 합니다. 오히려 더 자주 계속될 것이라고 봐야겠죠. 그렇기 때문에 검사 키트나 치료약 같은 기술적 개발도 필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방식을 많이 바꿔야 할 필요도 있어요. 이번 일이 앞으로 주거 환경이나 공간 활용 등 많은 사회적 과제를 불러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사태가 한 번으로 끝날 줄 알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다음에는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번 경험을 토대로 우리의 대처 능력 또한 계속 키워 나가야 해요.

‘이보다 더 전파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나타나더라도 능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이번에 제대로 연습을 하자.’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연일 뉴스에서 쏟아지는 소식들로 인해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오늘 스님의 법문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많은 분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래 봅니다.

온라인 생중계가 끝나자 정토회 회원들은 모둠별로 단톡방에 입장하여 법문을 들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게 수행이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온라인 소통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이제는 이 방식도 참 재미있습니다.”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법문을 들으니까 법당에서 들을 때보다 집중은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단톡방에서 도반들의 근황을 확인하며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스님은 생중계 촬영을 마치고 찾아온 손님을 만나기 위해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미팅과 회의를 연이어 가진 후 밤 9시가 넘어서 정토회관으로 들어왔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평화재단에서 미팅을 가진 후 오후에는 농사일을 하기 위해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

 

항상 이렇게 좋은 말씀을 전해주시는 스님께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한거 같다. 낙담해있기보다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고, 삶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지 말씀해주시니 일상생활에 정말 큰 위로가 된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신분은 정토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시길~ㅎㅎ

 

www.jungto.org 

댓글